“불편한 것”과 “불편해 보이는 것”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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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햇빛촌 조회 87회 작성일 26-06-11 13:07본문
기자명칼럼니스트 김시내 입력 2026.06.11 11:54 수정 2026.06.11 13:03
"많이 불편하시겠어요."
"힘드시겠네요."
대부분 악의는 없다. 오히려 걱정과 안타까움이 담긴 말일 때가 많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한 가지 생각이 든다.
과연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하지만 내가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신체적 조건이나 환경에서 오는 제약이지, 내 삶 전체가 불행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다른 곳에 있다.
내가 실제로 불편한 것과 상관없이, 누군가가 내 삶을 이미 불편하고 안타까운 삶으로 결론 내려 버리는 순간이다.
누군가는 휠체어를 보면 먼저 불편함을 떠올리고,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을 보면 먼저 안타까움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한 장면만으로 그 사람의 삶 전체를 짐작한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한 사람의 삶을 모두 알 수는 없다.
나는 카페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연구를 하고 글을 쓰며 하루를 보낸다. 어떤 날은 웃고, 어떤 날은 고민하고, 어떤 날은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살아간다.
물론 불편함은 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곧 불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누구나 자신만의 불편함을 안고 살아간다.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은 안경을 쓰고, 허리가 좋지 않은 사람은 자세를 조심한다.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음식을 가려 먹는다.
나는 휠체어를 이용하고 보조기기를 사용할 뿐이다.
그것은 내 삶을 이어가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지, 안타까움의 이유가 아니다.
그런데 유독 장애에 대해서만은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개인이 감당하며 살아가는 삶의 조건이 어느 순간 동정의 대상으로 바뀌어 버린다.
내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취향을 가지고, 어떤 목표를 향해 살아가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장애라는 한 가지 특징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처럼 여겨지곤 한다.
결국 사람들은 내가 실제로 어떤 삶을 사는지보다, 자신이 상상하는 장애인의 삶을 먼저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으면 한다.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것은 중요하다. 배려 역시 필요하다. 그러나 배려와 동정은 다르다.
배려는 상대를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되지만, 동정은 상대를 부족한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장애인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다.
누군가는 조금 더 천천히 움직이고, 누군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누군가는 휠체어를 이용한다. 그것은 각자가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연구를 위해 장애 당사자를 인터뷰했을 때,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내 인생인데 남들이 이미 다 판단해 버리잖아요."
어느 장애인이 했던 이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 마찬가지다. 누구도 자신의 삶을 타인의 추측으로 설명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불편한 것과 불편해 보이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그 차이를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장애를 특별한 이야기가 아닌 평범한 삶의 한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동정이 아닌 존중, 안타까움이 아닌 이해.
어쩌면 그것이 서로를 한 사람으로 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예의일지도 모른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칼럼니스트 김시내 sinae424@hanmail.net
"많이 불편하시겠어요."
"힘드시겠네요."
대부분 악의는 없다. 오히려 걱정과 안타까움이 담긴 말일 때가 많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한 가지 생각이 든다.
과연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하지만 내가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신체적 조건이나 환경에서 오는 제약이지, 내 삶 전체가 불행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다른 곳에 있다.
내가 실제로 불편한 것과 상관없이, 누군가가 내 삶을 이미 불편하고 안타까운 삶으로 결론 내려 버리는 순간이다.
누군가는 휠체어를 보면 먼저 불편함을 떠올리고,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을 보면 먼저 안타까움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한 장면만으로 그 사람의 삶 전체를 짐작한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한 사람의 삶을 모두 알 수는 없다.
나는 카페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연구를 하고 글을 쓰며 하루를 보낸다. 어떤 날은 웃고, 어떤 날은 고민하고, 어떤 날은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살아간다.
물론 불편함은 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곧 불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누구나 자신만의 불편함을 안고 살아간다.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은 안경을 쓰고, 허리가 좋지 않은 사람은 자세를 조심한다.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음식을 가려 먹는다.
나는 휠체어를 이용하고 보조기기를 사용할 뿐이다.
그것은 내 삶을 이어가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지, 안타까움의 이유가 아니다.
그런데 유독 장애에 대해서만은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개인이 감당하며 살아가는 삶의 조건이 어느 순간 동정의 대상으로 바뀌어 버린다.
내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취향을 가지고, 어떤 목표를 향해 살아가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장애라는 한 가지 특징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처럼 여겨지곤 한다.
결국 사람들은 내가 실제로 어떤 삶을 사는지보다, 자신이 상상하는 장애인의 삶을 먼저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으면 한다.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것은 중요하다. 배려 역시 필요하다. 그러나 배려와 동정은 다르다.
배려는 상대를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되지만, 동정은 상대를 부족한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장애인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다.
누군가는 조금 더 천천히 움직이고, 누군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누군가는 휠체어를 이용한다. 그것은 각자가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연구를 위해 장애 당사자를 인터뷰했을 때,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내 인생인데 남들이 이미 다 판단해 버리잖아요."
어느 장애인이 했던 이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 마찬가지다. 누구도 자신의 삶을 타인의 추측으로 설명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불편한 것과 불편해 보이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그 차이를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장애를 특별한 이야기가 아닌 평범한 삶의 한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동정이 아닌 존중, 안타까움이 아닌 이해.
어쩌면 그것이 서로를 한 사람으로 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예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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